『라일리우스 우정론』
키케로 저, 김남우 역, 아카넷, 2022년 4월 29일 출간
책소개
『라일리우스 우정론』은 격조 높은 문장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키케로의 대화편이다. 스키피오의 죽음, 그라쿠스 농지 개혁으로 야기된 로마 사회의 혼란, 대중 선동가들에 맞선 참된 정치가들의 대결 등에 관한 대화 내용은 역사적 상황의 가상적 배치와 실제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하다. 또 우정에 관한 일반의 견해를 검토하는 대목에서 인용하는 속담이나 학파의 주장은 ‘우정은 세월을 필요로 한다’는 지고의 가치를 확인하게 한다. 옮긴이는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의 회상』에서 우정을 다룬 대목을 우리말로 옮겨 키케로의 ‘우정론’과 비교할 수 있도록 부록으로 실었다.
책 속으로
조점관 퀸투스 무키우스께서는 그의 장인 가이우스 라일리우스를 기리면서 즐겁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셨고, 이야기할 때마다 주저 없이 그를 현자라고 칭하셨습니다.
(첫 문장, 1절, 본문 19~20쪽)
우정을 두고 생각하면 할수록 나에겐 더욱더 고민해보아야 할 것으로 보이는 문제가 있네. 그러니까 우정은 부족과 결핍 때문에 요구되는 것으로 혜택을 주고받음으로써 어떤 이가 자신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타인에게서 받고 그 대가를 갚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이렇게 주고받는 것이 우정의 고유성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보다 중하고, 이보다 아름답고, 이와 달리 본성 자체로부터 기인하는 다른 원인이 있는가의 문제이네. 우정(amicitia)의 어원이 되는 사랑(amor)이 호의의 시작이기 때문이지.
(26절, 45쪽)
우리는 친구들에게 선한 것들만을 청하고, 친구들을 위하여 선한 것들만을 행하되, 청하기를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언제든 응할 용의가 있어야 하며, 추호의 망설임도 없어야 한다. 우리는 과감히 기탄없이 조언해야만 한다. 바른 권고를 하는 친구들이 우정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게 할 것이며, 그 힘은 충고하는 데 발휘되어야 하고, 사안에 따라서는 솔직하면서도 준엄해야 하며, 그 힘이 발휘된다면 복종해야 한다.
(‘우정의 제1원칙’, 44절, 58~59쪽)
충고를 주고받는 것, 기탄없이 충고하되 호되게 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충고를 받아들이고 반감을 품지 않는 것이 진정한 우정의 본령인 것처럼, 우정에서 아부와 아양과 아첨보다 큰 해악은 없다네. 이 악덕을 여러 가지 이름을 부를 수 있겠지만, 분명 모든 것을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만 이야기하고 결코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경박하고 기만적인 인간들의 악덕이라 하겠네.
(91절, 92쪽)
두 단어(사랑, 우정)는 모두 ‘사랑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지. 그런데 ‘사랑하다’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어떤 필요도 따지지 않고 어떤 유익도 따지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 자체만을 연모하는 것이네. 그런데 이때 자네가 이득을 쫓지 않더라도 이득은 우정에서 흘러넘치게 된다네.
(100절, 99쪽)
(첫 문장, 1절, 본문 19~20쪽)
우정을 두고 생각하면 할수록 나에겐 더욱더 고민해보아야 할 것으로 보이는 문제가 있네. 그러니까 우정은 부족과 결핍 때문에 요구되는 것으로 혜택을 주고받음으로써 어떤 이가 자신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타인에게서 받고 그 대가를 갚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이렇게 주고받는 것이 우정의 고유성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보다 중하고, 이보다 아름답고, 이와 달리 본성 자체로부터 기인하는 다른 원인이 있는가의 문제이네. 우정(amicitia)의 어원이 되는 사랑(amor)이 호의의 시작이기 때문이지.
(26절, 45쪽)
우리는 친구들에게 선한 것들만을 청하고, 친구들을 위하여 선한 것들만을 행하되, 청하기를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언제든 응할 용의가 있어야 하며, 추호의 망설임도 없어야 한다. 우리는 과감히 기탄없이 조언해야만 한다. 바른 권고를 하는 친구들이 우정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게 할 것이며, 그 힘은 충고하는 데 발휘되어야 하고, 사안에 따라서는 솔직하면서도 준엄해야 하며, 그 힘이 발휘된다면 복종해야 한다.
(‘우정의 제1원칙’, 44절, 58~59쪽)
충고를 주고받는 것, 기탄없이 충고하되 호되게 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충고를 받아들이고 반감을 품지 않는 것이 진정한 우정의 본령인 것처럼, 우정에서 아부와 아양과 아첨보다 큰 해악은 없다네. 이 악덕을 여러 가지 이름을 부를 수 있겠지만, 분명 모든 것을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만 이야기하고 결코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경박하고 기만적인 인간들의 악덕이라 하겠네.
(91절, 92쪽)
두 단어(사랑, 우정)는 모두 ‘사랑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지. 그런데 ‘사랑하다’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어떤 필요도 따지지 않고 어떤 유익도 따지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 자체만을 연모하는 것이네. 그런데 이때 자네가 이득을 쫓지 않더라도 이득은 우정에서 흘러넘치게 된다네.
(100절, 99쪽)
출판사 서평
우정은 “의지와 열정과 생각의 완벽한 공감”
우정과 행복한 삶의 관계를 탐구한 일상의 철학
이 작품은 로마 귀족들의 상식을 기반으로 우정을 칭송하고 우정과 행복한 삶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화편이다. 작중 화자인 현자 라일리우스는 스키피오를 회상하며 두 사위 판니우스와 스카이볼라에게 우정의 본질과 계율을 일러준다. 라일리우스의 세 강연은 우정에 대한 일반의 견해들을 검토하고, 우정이 어떻게 생겨나는가를 설명하며, 어떻게 우정을 지켜갈 수 있는지 조언하는 순으로 이어진다. 키케로는 스키피오와 라일리우스의 우정을 기리는 형식으로 집필된 이 작품을 평생지기인 아티쿠스에게 헌정했다.
인류 역사상 서너 쌍이 되지 않은 우정의 쌍이 있었다고 전제하는 키케로에게 라일리우스와 스키피오는 진정한 우정의 대표적 사례이다. 라일리우스 집안은 선친 때부터 스키피오 집안과 인연이 깊었고, 라일리우스는 당시 집정관이던 소(少)스키피오와 함께 제3차 카르타고 전쟁에 참여했으며, 이 둘은 로마의 농지 개혁에도 입장을 공유했다. 기원전 2세기 ‘희랍 문화 수용’의 구심점이던 ‘스키피오 동아리’도 스키피오와 라일리우스의 활동 시기와 때를 같이한다. 키케로는 선한 사람들에게만 가능하다는 단서를 붙여 이들의 진정한 우정을 “의지와 열정과 생각의 완벽한 공감”이라고 정의한다.
참으로 행운이나 자연이 나에게 부여한 모든 것 가운데 스키피오와의 우정과 견줄 만한 것을 나는 갖지 못했다네. 그와의 우정 가운데 국사의 의견일치를, 그와의 우정 가운데 사적인 일들의 조언을, 그와의 우정 가운데 즐거움 가득한 유식을 나는 누렸다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는 결코 한 번도, 어떤 사소한 일로도 나와 충돌하지 않았고, 그로부터 나는 듣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할 어떤 말도 듣지 못하였네. (103절, 101쪽)
우정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인간 본성에 반하여 유익을 좇는 우정을 경계
‘사랑(amor)’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하는 ‘우정(amicitia)’은 애정과 호의에 따른 개인 사이의 친밀한 교제를 의미한다. 로마에서 우정은 정서적 연대보다는 상호 호혜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는데, 후원자인 유력인사들과 그들의 호의를 받은 시인들의 관계가 우정으로 이해되었고 ‘친구(amicus)’는 로마와 친교를 맺는 외국 정부나 그 수장을 일컫는 말이었다. 키케로는 지혜를 논외로 한다면, ‘신들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선물 가운데 우정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말하고 ‘우정이 아주 많고 아주 큰 유익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우정의 가장 큰 유익은 ‘커다란 희망으로 미래를 밝히며 용기를 주고 의기를 북돋워’ 개인으로 하여금 불행을 견디고 행복한 삶으로 이끈다는 점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키케로는 우정이 인간 본성에서 유래하며 사랑 감정을 동반한 영혼의 연결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으로 유익에 대한 고려에서 생겨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우정이 결핍에서 생겨나지 않고 필요에 영향을 받지도 않는 것은 인간 본성이 바뀔 수 없는 만큼이나 참된 우정도 영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키케로가 책에서 다루는 인간의 본성적인 애정,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 새로운 친구와 오래된 친구에 대한 논의, 우월성에 따른 우정에 대한 논의 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관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며, 우정이 유용성을 좇는 일을 경계하는 대목은 에피쿠로스주의에 비판적이던 키케로의 입장을 여실히 드러낸다.
우정은 다름 아니라 모든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두고 애정과 호의로 서로 공감하는 것이지. 불멸의 신들께서 주신 것들 가운데, 지혜를 논외로 한다면, 인간에게 아마도 우정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이네. (20절, 38쪽)
우정은 내가 보기에 인간 본성에서 유래하지. 필요에서 유래하지 않네. 우정은 일종의 사랑 감정을 동반한 영혼의 연결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지. 그 일이 얼마나 많은 유익을 가져다줄지를 고려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네. (27절, 46쪽)
친구는 “말하자면 또 다른 나”
행복의 한 축이 ‘정의’라면 나머지 한 축은 ‘우정’
키케로에게서 우정의 상대인 친구에게 어떤 대가를 바라는 일도 우정의 본령에서 벗어나는 일이 된다. 모든 이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그저 자신이 소중하기 때문이며 우정에도 자신을 사랑하는 일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때라야 참된 우정을 찾을 수 있다고 키케로는 강조한다. 곧 “친구는 말하자면 또 다른 나”라는 것이다. 또 친구에게는 선한 것들만을 청하고 무절제함을 피하며 충고도 진정성 있게 하라는 등 삶의 계율로 삼아도 손색없는 가르침을 전한다.
우정이 삶에서 중요하게 논의되는 것은 그것이 곧 행복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사회 정치적으로 정의(正義)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는 하나의 축이라고 할 때, 사적 영역에서 윤리 도덕적으로 우정(友情)은 행복 실현의 또 다른 축이다. 로마 공화정 말기를 살았던 키케로에게 국가는 포기할 수 없는 행복의 중요한 근간이었지만 시골 별장에 모인 친구들의 모임이 이 시기에 키케로가 집필한 다수의 철학적 대화편의 배경이 된다는 점은 키케로가 행복한 삶과 우정을 연관시킨다는 인상을 준다.
참된 친구를 바라보는 사람은 흡사 자기 자신의 초상을 바라보는 것이네. 따라서 그들은 없어도 있는 것이고, 병약해도 강건한 것이고, - 말하기 힘든 것이지만 - 죽어서도 사는 것이네. (23절, 41쪽)
모두는 각자 자신을 사랑하는데, 그것은 자기 사랑의 어떤 대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각자가 자신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네. 똑같은 것을 우정에도 적용할 때만 우리는 참된 우정을 찾게 될 것이네. 친구는 말하자면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지. (80절, 85쪽)
『라일리우스 우정론』은 격조 높은 문장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키케로의 대화편이다. 스키피오의 죽음, 그라쿠스 농지 개혁으로 야기된 로마 사회의 혼란, 대중 선동가들에 맞선 참된 정치가들의 대결 등에 관한 대화 내용은 역사적 상황의 가상적 배치와 실제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하다. 또 우정에 관한 일반의 견해를 검토하는 대목에서 인용하는 속담이나 학파의 주장은 ‘우정은 세월을 필요로 한다’는 지고의 가치를 확인하게 한다. 옮긴이는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의 회상』에서 우정을 다룬 대목을 우리말로 옮겨 키케로의 ‘우정론’과 비교할 수 있도록 부록으로 실었다.
우정과 행복한 삶의 관계를 탐구한 일상의 철학
이 작품은 로마 귀족들의 상식을 기반으로 우정을 칭송하고 우정과 행복한 삶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화편이다. 작중 화자인 현자 라일리우스는 스키피오를 회상하며 두 사위 판니우스와 스카이볼라에게 우정의 본질과 계율을 일러준다. 라일리우스의 세 강연은 우정에 대한 일반의 견해들을 검토하고, 우정이 어떻게 생겨나는가를 설명하며, 어떻게 우정을 지켜갈 수 있는지 조언하는 순으로 이어진다. 키케로는 스키피오와 라일리우스의 우정을 기리는 형식으로 집필된 이 작품을 평생지기인 아티쿠스에게 헌정했다.
인류 역사상 서너 쌍이 되지 않은 우정의 쌍이 있었다고 전제하는 키케로에게 라일리우스와 스키피오는 진정한 우정의 대표적 사례이다. 라일리우스 집안은 선친 때부터 스키피오 집안과 인연이 깊었고, 라일리우스는 당시 집정관이던 소(少)스키피오와 함께 제3차 카르타고 전쟁에 참여했으며, 이 둘은 로마의 농지 개혁에도 입장을 공유했다. 기원전 2세기 ‘희랍 문화 수용’의 구심점이던 ‘스키피오 동아리’도 스키피오와 라일리우스의 활동 시기와 때를 같이한다. 키케로는 선한 사람들에게만 가능하다는 단서를 붙여 이들의 진정한 우정을 “의지와 열정과 생각의 완벽한 공감”이라고 정의한다.
참으로 행운이나 자연이 나에게 부여한 모든 것 가운데 스키피오와의 우정과 견줄 만한 것을 나는 갖지 못했다네. 그와의 우정 가운데 국사의 의견일치를, 그와의 우정 가운데 사적인 일들의 조언을, 그와의 우정 가운데 즐거움 가득한 유식을 나는 누렸다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는 결코 한 번도, 어떤 사소한 일로도 나와 충돌하지 않았고, 그로부터 나는 듣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할 어떤 말도 듣지 못하였네. (103절, 101쪽)
우정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인간 본성에 반하여 유익을 좇는 우정을 경계
‘사랑(amor)’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하는 ‘우정(amicitia)’은 애정과 호의에 따른 개인 사이의 친밀한 교제를 의미한다. 로마에서 우정은 정서적 연대보다는 상호 호혜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는데, 후원자인 유력인사들과 그들의 호의를 받은 시인들의 관계가 우정으로 이해되었고 ‘친구(amicus)’는 로마와 친교를 맺는 외국 정부나 그 수장을 일컫는 말이었다. 키케로는 지혜를 논외로 한다면, ‘신들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선물 가운데 우정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말하고 ‘우정이 아주 많고 아주 큰 유익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우정의 가장 큰 유익은 ‘커다란 희망으로 미래를 밝히며 용기를 주고 의기를 북돋워’ 개인으로 하여금 불행을 견디고 행복한 삶으로 이끈다는 점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키케로는 우정이 인간 본성에서 유래하며 사랑 감정을 동반한 영혼의 연결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으로 유익에 대한 고려에서 생겨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우정이 결핍에서 생겨나지 않고 필요에 영향을 받지도 않는 것은 인간 본성이 바뀔 수 없는 만큼이나 참된 우정도 영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키케로가 책에서 다루는 인간의 본성적인 애정,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 새로운 친구와 오래된 친구에 대한 논의, 우월성에 따른 우정에 대한 논의 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관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며, 우정이 유용성을 좇는 일을 경계하는 대목은 에피쿠로스주의에 비판적이던 키케로의 입장을 여실히 드러낸다.
우정은 다름 아니라 모든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두고 애정과 호의로 서로 공감하는 것이지. 불멸의 신들께서 주신 것들 가운데, 지혜를 논외로 한다면, 인간에게 아마도 우정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이네. (20절, 38쪽)
우정은 내가 보기에 인간 본성에서 유래하지. 필요에서 유래하지 않네. 우정은 일종의 사랑 감정을 동반한 영혼의 연결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지. 그 일이 얼마나 많은 유익을 가져다줄지를 고려하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네. (27절, 46쪽)
친구는 “말하자면 또 다른 나”
행복의 한 축이 ‘정의’라면 나머지 한 축은 ‘우정’
키케로에게서 우정의 상대인 친구에게 어떤 대가를 바라는 일도 우정의 본령에서 벗어나는 일이 된다. 모든 이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그저 자신이 소중하기 때문이며 우정에도 자신을 사랑하는 일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때라야 참된 우정을 찾을 수 있다고 키케로는 강조한다. 곧 “친구는 말하자면 또 다른 나”라는 것이다. 또 친구에게는 선한 것들만을 청하고 무절제함을 피하며 충고도 진정성 있게 하라는 등 삶의 계율로 삼아도 손색없는 가르침을 전한다.
우정이 삶에서 중요하게 논의되는 것은 그것이 곧 행복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사회 정치적으로 정의(正義)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는 하나의 축이라고 할 때, 사적 영역에서 윤리 도덕적으로 우정(友情)은 행복 실현의 또 다른 축이다. 로마 공화정 말기를 살았던 키케로에게 국가는 포기할 수 없는 행복의 중요한 근간이었지만 시골 별장에 모인 친구들의 모임이 이 시기에 키케로가 집필한 다수의 철학적 대화편의 배경이 된다는 점은 키케로가 행복한 삶과 우정을 연관시킨다는 인상을 준다.
참된 친구를 바라보는 사람은 흡사 자기 자신의 초상을 바라보는 것이네. 따라서 그들은 없어도 있는 것이고, 병약해도 강건한 것이고, - 말하기 힘든 것이지만 - 죽어서도 사는 것이네. (23절, 41쪽)
모두는 각자 자신을 사랑하는데, 그것은 자기 사랑의 어떤 대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각자가 자신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네. 똑같은 것을 우정에도 적용할 때만 우리는 참된 우정을 찾게 될 것이네. 친구는 말하자면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지. (80절, 85쪽)
『라일리우스 우정론』은 격조 높은 문장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키케로의 대화편이다. 스키피오의 죽음, 그라쿠스 농지 개혁으로 야기된 로마 사회의 혼란, 대중 선동가들에 맞선 참된 정치가들의 대결 등에 관한 대화 내용은 역사적 상황의 가상적 배치와 실제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하다. 또 우정에 관한 일반의 견해를 검토하는 대목에서 인용하는 속담이나 학파의 주장은 ‘우정은 세월을 필요로 한다’는 지고의 가치를 확인하게 한다. 옮긴이는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의 회상』에서 우정을 다룬 대목을 우리말로 옮겨 키케로의 ‘우정론’과 비교할 수 있도록 부록으로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