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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토피카』, 키케로 저/ 성중모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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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피카』

키케로 저, 성중모 역, 아카넷, 2022년 5월 27일 출간







책소개

이상적 연설가에 이르는 실전 교범 『토피카』
연설에 앞서 ‘논소’를 통해 논거들을 갖추고 연설가에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라
이 책은 키케로가 친구인 법률가 트레바티우스(Gaius Trebatius Testa)에게 수사학을 알려주기 위하여 쓴 것이다. 연설에 관하여 ‘논소’와 ‘문제’라는 소재를 이중으로 모색하는 작품이다. 소재의 모색도 이중이거니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수사학 전통과 자기 고유의 수사학 사유에서 모색되는 주제 의식도 이중이다. 동일한 내용이 1회에 그치지 않고 2회 반복되어 설명되는 변주의 모색까지 더하면, 이중의 모색만도 삼중에 이른다. 키케로는 도대체 이 겹겹의 모색을 통하여 로마 시민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했을까?
키케로는 공화정적 가치를 아는 선량한 시민, 곧 선인만이 국사를 운영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것이 공화국 로마를 살리는 유일한 방책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키케로를 따를 때, 선인은 필시 ‘완벽한 연설가’여야 했다. 선인은 보편적 교양과 철학적 지혜를 겸비하고 이론과 실전에 모두 밝아야 했지만 무엇보다 말하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논거가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무기라면, 이 논거가 도출되는 장소 곧 논소는 토론과 연설의 준비 과정에서 반드시 모색되어야 할 사유의 장소였다. 이 책 『토피카』는 로마 현실이 반영된 실례로 논소를 정리하여 누구나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함으로써, 이상적 연설가를 꿈꾸는 이라면 품속에 넣고 수시로 찾아볼 수 있을 법한 실전 교범이다.

책 속으로

자네가 내 투스쿨름 별장에서 나와 함께 머물던 때, 우리는 각자 서재에서 자기 구미에 맞게 보고 싶은 두루마리들을 펼쳐보고 있었지. 자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토피카』라는 책을 발견했는데, 그 책은 그가 여러 권에 걸쳐 풀어낸 것이라네. 그 제목에 흥분하여 자네는 곧바로 나에게 그 책의 내용을 물었지.
(1절, 본문 19쪽)

장소가 밝혀지고 표시되면 숨겨진 물건들의 발견이 용이하듯, 우리가 일정한 논거를 탐색하려 할 때도 그것의 장소들을 알아야 하겠지.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들을, 말하자면 논거들을 꺼내는 자리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논소라고 불렀던 것이네. 그리하여 논소란 논거의 자리이고, 논거는 의심스러운 사항에 신빙성을 주는 근거라고 정의할 수 있겠지.
(7~8절, 22쪽)

내가 해설한 논소들 각각이 일정한 자기 지체들을 갖고 있으니, 이 지체들을 가능한 한 정밀하게 탐색하려 하네만, 먼저 정의 자체부터 말해 보겠네. 정의란 정의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언사이지. 그런데 정의에는 주된 종류가 두 개 있네. 즉 하나는 있는 것들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각되는 것에 관한 것이지.
(26절, 28쪽)

논소가 후행하는 것, 선행하는 것, 모순되는 것 세 부분으로 나뉜다고 할 때, 논거 발견의 논소로는 하나이지만, 논거 취급의 논소로는 3중이네. 즉, 은 전부가 유증된 여자는 금전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상정할 때 다음의 셋은 무엇이 다를까? “금전이 은이라면, 여자에게 유증되었다. 그런데 금전이 은이다. 따라서 그녀에게 유증된 것이다”라고 추론할 때, “금전이 유증되지 않았다면, 금전은 은이 아니다. 그런데 금전은 은이다. 따라서 유증되었다”라고 추론할 때, “은이 유증되고 동시에 금전이 유증되지 않은 것은 참이 아니다. 그런데 은이 유증되었다. 따라서 금전은 유증되었다”라고 추론할 때 말일세.
(53절, 40~41쪽)

내가 아는 자네의 소원과 관련해선, 자네의 욕구가 여기서 풍성하게 충족됐길 바라네. 즉 모든 논의에서 논거 발견과 관련된 어떠한 것도 간과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자제가 요구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포함시켰는데, 이것은 관대한 매도인들이라면 빈번히 하는 일을 한 것이네.
(62절, 62쪽)

출판사 서평

키케로 최후의 수사학 저술 『토피카』
법의 민족 로마 독자들에게 현실에 부합하는 실례로 설명하다

키케로는 자신의 최후의 수사학 저술인 이 책에서 동명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 『토피카』를 설명의 거울로 활용한다. 키케로 자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전통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두 작품이 다루는 내용은 그 궤를 달리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관념들의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변 규칙들을 다룬 것과는 달리, 키케로는 실제 연설에서 논소들이 어떻게 사용되어야만 적실한지 그 방법을 모색한다. 키케로에게 연설은 이론 이상이었던 것이다.
책을 헌정 받은 트레바티우스는 로마에서 가장 현실적인 직업이라 할 수 있는 법률가였다. 법률지식이 탁월했던 트레바티우스도 연설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키케로의 서재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변의 방식을 다루었다는 『토피카』를 발견하고 찾아내어 그 내용을 알려줄 적임자로 키케로를 지목한 것은 도입부에 설명된 바이다. 키케로에게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저술의 첫 동기는 되었겠지만 이 책은 엄연히 공간(公刊)을 목표하였다. 이 저술의 시점을 기원전 44년으로 잡는다면, 카이사르 암살 이후 키케로가 로마의 공화주의자들에게서도 외면당하는 처지에서 아테나이로 도망치듯 황급히 떠난 바로 그때이다. 격랑에 시달리던 배 위에서 지력을 그러모아 키케로는 당시의 동료 시민들과 후대에 지침을 주고 싶어 했다. 공화주의자 키케로 최후의 미션이었다.

서구 연설의 전통을 환기하는 키케로의 수사학
공화국의 산적한 난제들 역시 연설로 풀어라

연설을 잘했던 인물들은 그리스에도 즐비하다. 그러나 역시 연설가 중 가장 큰 이름은 키케로다. 기반을 잃어가던 공화정적 가치들을 위해 사투를 벌이던 키케로도 수사학을 깊이 탐구하고 연설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수사학은 단순히 말을 꾸미는 기술이 아니라 키케로가 옹호하던 가치들과 존망을 같이할 가장 중요한 무기였기 때문이다. 키케로가 남긴 열정 가득한 모든 연설에는 피부로 느껴지는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자리한다. 무력은 소용에 한계가 있지만 연설은 공동체의 유지에 지속적이고 굳건한 효력을 갖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공신력 있다는 통계를 보면,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 한다. 정쟁은 있어도 토론은 없고 정적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쁜 생각을 하는 악인일 뿐이다. 연설은 상대를 신뢰하고 배려와 협력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소통수단으로서 토론과 짝하는 서구의 전통이다. 토론의 전략을 구상하여 연설을 준비하는 일은 그 자체로 현실의 문제에 대한 통찰을 제고한다. 국가 로마의 명운은 키케로의 바람과 뜻을 달리했지만 그의 연설 이론은 서구 전체를 여전히 지탱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시급한 과제를 키케로에게서 답을 구하는 까닭도 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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