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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카르미데스』, 플라톤 저/ 유혁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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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미데스』

플라톤 저, 유혁 역, 아카넷, 2021년 12월 27일 출간


책소개


‘절제’와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30인 과두정의 당사자들과 소크라테스가 나누는 극적인 아이러니의 대화편

『카르미데스』는 포테이다이아 전투(기원전 432~429년)에서 돌아온 소크라테스가 크리티아스와 카르미데스를 상대로 ‘절제’와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을 핵심 주제로 나누는 대화편이다.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와 긴밀하게 연상되어 회자되는 “너 자신을 알라”는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그 유명한 말이 정확히 어떤 뜻인지, 또 애초에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이 가능한지, 또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흥미롭고 중요한 문제를, 대화편이라는 극적 장치를 활용해서, 네 가지 주요 덕 중의 하나인 절제와 연결지어서 다룬다. 또 덕을 추구하는 훌륭하고 좋은 삶이란 어떠한 것이며,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아가게 될 수 있는가 하는 좀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윤리적 문제의 맥락 속에서 ‘자신을 안다’는 일과 그것을 삶에서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의 의미와 중요성을 관련된 논쟁점들과 함께 다룬다.
이 대화편이 다루는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의 하나이자 전통적으로 ‘절제’와 ‘겸양’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된 ‘소프로쉬네’를 플라톤은 ‘자기 자신을 안다’는 개념으로 재해석한다. 곧 절제는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자각하는 일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단순하게 인식론의 문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앎의 가능성에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는 당사자의 태도와 인격, 사람됨을 포함하는 도덕과 윤리의 문제까지를 포괄하며, 바로 여기에 이 개념의 독특하고도 고유한 특성이 있다고 옮긴이는 강조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덕윤리라는 논의의 지평에서 ‘실천적 지혜’를 다룬 내용의 기반과 출발점을 플라톤이 제공했다고 평가한다.

소크라테스의 지혜는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가?
덕을 실현하는 훌륭하고 좋은 삶의 출발점은 어디에 있는가?
플라톤이 이 작품을 저술한 시점을 고려한다면, 작품 속 소크라테스는 30인 참주의 과두정을 주도하고 이에 가담한 크리티아스와 카르미데스를 과거의 어느 시점에 서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셈이며, 이러한 설정은 과두정의 폭정을 경험한 당대의 아테네 독자들의 관점에서 대단히 역설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최소한의 상식과 양식을 지닌 작품 속 청년 카르미데스는 왜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삶의 방식을 택하지 못하고 현실에서 30인 참주의 행동대원으로 머물렀을까?
옮긴이는 이러한 플라톤의 작품 설정이 절제를 비롯한 덕을 실현하고 발휘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깨지기 쉬운(fragile)가 하는 점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함께 지니고 있다고 본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처한 실존적이고 실천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를 함께 품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젊고 아름답고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던 카르미데스가 선택의 기로에 서서 한쪽으로 기울어가기 시작하는 시점이 작품에 형상화되었다는 것이다.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을 알고 공동체라는 삶의 맥락 속에서 그것을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일은 훌륭하고 좋은 삶의 출발점이다. 작품 속 소크라테스가 카르미데스와 크리티아스에게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이러한 자각과 실천의 중요성이 아니었을까.

목차

‘정암고전총서’를 펴내며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을 새롭게 펴내며
작품 내용 구분
등장인물
일러두기
본문
주석
작품 안내
참고문헌
찾아보기
한국어-그리스어
그리스어-한국어
주요 개념
고유명사, 격언
옮긴이의 말

책 속으로

우리는 그 전날 저녁나절에 포테이다이아의 주둔지(駐屯地)에서 돌아왔다네. 어찌나 오랜만에 돌아왔던지, 나는 늘 마음 쓰던 일을 하러 익숙하게 드나들던 곳으로 기쁘게 갔다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실레 신전 맞은편에 있는 타우레아스의 레슬링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나는 매우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었다네.
첫 문장, 본문 23쪽

사실상 저로서는 바로 이것이, 즉 자기 자신을 앎이, 절제라고 주장하는 바이고, 델포이에 그러한 명문(銘文)을 바친 사람에게도 동의하니까요. 또 사실 이 문구(文句)는 신이 신전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인사말로서 ‘안녕’이라는 인사말 대신에 바쳐진 것이라고 제게는 그렇게 보이니까요.
164d, 본문 55쪽

그가 찾고자 추구하는 그러한 앎이 있다면, 그것을 우리는 지혜라는 말로 지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플라톤에게 지혜를 사랑하는 일(philosophia)은 인간의 윤리적인 삶과 그 가능 근거에 대한 앎에 도달하고자 탐구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질문들에 답하려는 부단한 노력의 과정을 핵심으로 삼는다.
주석, 본문 103쪽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하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 이 작품 내용의 범위를 넘어서서, 나 자신의 삶의 맥락 속에서 스스로 탐구해 보자. 아마도 자신을 안다는 것은 스스로가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 자아를 이루고 완성해 가고, 그렇게 해서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발견하고, 그렇게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자신의 행위와 실천을 통해서 전체로서의 삶의 과정을 통해서 정의해 나가는 여정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옮긴이의 말」, 본문 459~4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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