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 철학의 역설』
키케로 저, 이기백 역, 아카넷, 2022년 6월 15일 출간
책소개
철학적 진리는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정말 가장 참된 것들’에 대한 확신으로
대중을 설득한 키케로의 여섯 가지 역설들
‘정말 가장 참된 것들’에 대한 확신으로
대중을 설득한 키케로의 여섯 가지 역설들
소크라테스를 계승한 스토아 학파로 분류되는 키케로는 스스로가 ‘정말 가장 참된 것들(verissima)’이라 한 ‘파라독사(paraoxa)’, 일명 ‘스토아 철학의 역설’에 대한 자신의 견해 여섯 가지를 연설의 형태로 서술했다. 키케로는 일견 불합리하게 보이기도 하는 역설들이 실은 참되다는 점을 철학적 논변을 통해 밝히기도 하지만, “너무 냉정하게 논의하면 꽤 따분하게 여겨질 수 있다”며 수사적인 연설을 펼친다. 로마의 역사 속 영웅들의 일화와 당시 정치인들의 행태를 이야기하며 역설을 대중도 쉽게 납득할 수 있게 한다. 그는 철학과 수사학과 역사가 어우러진 흥미로운 연설문 형태로 완성해내며 철학을 어떻게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훗날 르네상스 유럽에서 그의 저서 중 『의무론』과 함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수많은 편집본이 나왔지만 국내에는 제대로 소개되지 않다가, 가장 신뢰할 만한 플라스베르크의 편집본(1908)을 저본 삼아 『스토아 철학의 역설』을 선보이게 되었다. 이에 더해 키케로의 또 다른 연설문 「무레나 변호 연설」의 일부와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의 『도덕 서한』 일부를 부록에 실어 키케로의 숨겨진 명작을 더욱 면밀히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은 훗날 르네상스 유럽에서 그의 저서 중 『의무론』과 함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수많은 편집본이 나왔지만 국내에는 제대로 소개되지 않다가, 가장 신뢰할 만한 플라스베르크의 편집본(1908)을 저본 삼아 『스토아 철학의 역설』을 선보이게 되었다. 이에 더해 키케로의 또 다른 연설문 「무레나 변호 연설」의 일부와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의 『도덕 서한』 일부를 부록에 실어 키케로의 숨겨진 명작을 더욱 면밀히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책 속으로
당신들 중 누군가가 이 연설이 내 생각이 아니라 스토아주의자들의 논의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기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하지만 나는 내 생각을 말할 것이고, 그토록 대단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보다는 간결하게 말할 것입니다.
_25쪽
자신에게 의지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오직 자신에게만 맡기는 이는 누구라도 가장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면 모든 희망과 추론과 생각이 운에 달려 있는 자에게는 확고한 어떤 것도 있을 수 없고, 그가 확신하는 어떤 것도 단 하루도 그에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입니다.
_36쪽
죄를 저지르는 것은 분명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오직 허용되지 않는다고 입증되기만 하면 유효합니다. 이 허용되지 않음이 결코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없다면, 죄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에 달려 있으므로 언제나 하나이고 동일한 그 점에서 생긴 죄들은 동등해야 합니다. 그리고 덕들이 서로 동등하다면, 악덕들도 동등하다는 것이 필연적입니다.
_40쪽
당신이 종종 어리석긴 해도 정복될 수 없습니다. 현자의 영혼은 뜻의 위대함으로, 인간사에 대한 인내심으로, 운에 대한 경멸로, 요컨대 방벽과도 같은 온갖 덕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정복당하고 굴복당하겠습니까?
_47쪽
실로 이 사람이 영도자로 찬양받거나 그렇게 불리기까지 하거나 이 경칭을 받을 만하다고 여겨져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그가 영도자입니까? 그가 어떤 자유인을 지배할까요? 그는 자신의 욕구를 지배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_52쪽
당신이 자신의 돈을 언급하면서 그토록 과도하게 뽐내는 것은 뭘 말하려는 것입니까? 당신만이 부유하다는 것입니까? 불멸의 신들이시여! 뭔가를 듣고 배웠다는 것을 기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_62쪽
_25쪽
자신에게 의지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오직 자신에게만 맡기는 이는 누구라도 가장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면 모든 희망과 추론과 생각이 운에 달려 있는 자에게는 확고한 어떤 것도 있을 수 없고, 그가 확신하는 어떤 것도 단 하루도 그에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입니다.
_36쪽
죄를 저지르는 것은 분명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오직 허용되지 않는다고 입증되기만 하면 유효합니다. 이 허용되지 않음이 결코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없다면, 죄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에 달려 있으므로 언제나 하나이고 동일한 그 점에서 생긴 죄들은 동등해야 합니다. 그리고 덕들이 서로 동등하다면, 악덕들도 동등하다는 것이 필연적입니다.
_40쪽
당신이 종종 어리석긴 해도 정복될 수 없습니다. 현자의 영혼은 뜻의 위대함으로, 인간사에 대한 인내심으로, 운에 대한 경멸로, 요컨대 방벽과도 같은 온갖 덕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정복당하고 굴복당하겠습니까?
_47쪽
실로 이 사람이 영도자로 찬양받거나 그렇게 불리기까지 하거나 이 경칭을 받을 만하다고 여겨져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그가 영도자입니까? 그가 어떤 자유인을 지배할까요? 그는 자신의 욕구를 지배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_52쪽
당신이 자신의 돈을 언급하면서 그토록 과도하게 뽐내는 것은 뭘 말하려는 것입니까? 당신만이 부유하다는 것입니까? 불멸의 신들이시여! 뭔가를 듣고 배웠다는 것을 기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_62쪽
출판사 서평
왜 연설인가
수사적 논변의 호소력으로 철학을 말하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뿌리다. 그래서 철학은 중요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만큼 어렵다. 그렇다고 알기 쉽게 풀어서 철학을 전달하면, 그 중요성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철학의 딜레마를 고민한 사람은 현대의 철학자뿐만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도 이와 같은 고민을 했고, 연설의 형태로 자신의 철학을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스토아 철학의 역설』이다.
작중 화자인 키케로는 당시 일반의 견해에 반하는 여섯 가지 역설을 설명하기에 앞서 카토(Marcus Porcius Cato Uticensis, 기원전 95~46년)의 원로원 연설을 격찬한다. 카토는 당시 관행에 어울리지 않게 철학적 주제들을 연설에 끌어들여, 특히 엄격한 논리적 추론을 강조하는 스토아 철학을 수사적 논변의 형태로 펼치며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키케로는 그의 연설을 통해 “연설에 의해 인정할 만하게 만들 수 없을 만큼 터무니없는 견해는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왜 여섯 가지 역설인가
논변을 뒷받침하는 엄격한 논리로 스토아 철학을 말하다
키케로가 다루는 역설은 “오직 훌륭한 것만이 좋은 것이다”, “덕은 행복을 위해 자족적인 것이다”, “죄들도 동등하고 올바른 행위들도 동등하다”, “어리석은 자는 모두 미쳐 있다”, “오직 현자만이 자유롭고, 모든 어리석은 자는 노예다”, “오직 현자만이 부자이다” 여섯 가지이다. 이에 대해 그는 “이 연설이 내 생각이 아니라 스토아주의자들의 논의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기지 않을까 염려됩니다”라고 했지만, 역설들 자체는 초기 스토아 학파, 특히 라에르티오스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가 “내 생각을 말할 것”이라고 한 점은 역설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대중을 설득하는 자신의 논변이 독창적이라는 의미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그가 수사적 논변, 즉 연설의 형태를 취한 것은 어디까지나 철학적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서이지, 대중을 설득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키케로는 선동가가 아니라 철학자로서 책을 집필했다. 그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설의 형태로 책을 집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논리적 추론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토아 철학의 역설에 대해 키케로는 ‘정말 가장 참된 것들’로서 이보다 더 참되고 사람들의 삶에 더 쓸모 있는 것은 없으며, 여기에는 사람들을 악으로부터 보호해주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는 스토아 철학의 역설에 대한 철학적 확신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를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 또한 분명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이를 알리기 위한 가장 좋은 형식으로 논변을 채택했다.
수사적 논변의 호소력으로 철학을 말하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뿌리다. 그래서 철학은 중요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만큼 어렵다. 그렇다고 알기 쉽게 풀어서 철학을 전달하면, 그 중요성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철학의 딜레마를 고민한 사람은 현대의 철학자뿐만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도 이와 같은 고민을 했고, 연설의 형태로 자신의 철학을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스토아 철학의 역설』이다.
작중 화자인 키케로는 당시 일반의 견해에 반하는 여섯 가지 역설을 설명하기에 앞서 카토(Marcus Porcius Cato Uticensis, 기원전 95~46년)의 원로원 연설을 격찬한다. 카토는 당시 관행에 어울리지 않게 철학적 주제들을 연설에 끌어들여, 특히 엄격한 논리적 추론을 강조하는 스토아 철학을 수사적 논변의 형태로 펼치며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키케로는 그의 연설을 통해 “연설에 의해 인정할 만하게 만들 수 없을 만큼 터무니없는 견해는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왜 여섯 가지 역설인가
논변을 뒷받침하는 엄격한 논리로 스토아 철학을 말하다
키케로가 다루는 역설은 “오직 훌륭한 것만이 좋은 것이다”, “덕은 행복을 위해 자족적인 것이다”, “죄들도 동등하고 올바른 행위들도 동등하다”, “어리석은 자는 모두 미쳐 있다”, “오직 현자만이 자유롭고, 모든 어리석은 자는 노예다”, “오직 현자만이 부자이다” 여섯 가지이다. 이에 대해 그는 “이 연설이 내 생각이 아니라 스토아주의자들의 논의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기지 않을까 염려됩니다”라고 했지만, 역설들 자체는 초기 스토아 학파, 특히 라에르티오스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가 “내 생각을 말할 것”이라고 한 점은 역설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대중을 설득하는 자신의 논변이 독창적이라는 의미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그가 수사적 논변, 즉 연설의 형태를 취한 것은 어디까지나 철학적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서이지, 대중을 설득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키케로는 선동가가 아니라 철학자로서 책을 집필했다. 그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설의 형태로 책을 집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논리적 추론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토아 철학의 역설에 대해 키케로는 ‘정말 가장 참된 것들’로서 이보다 더 참되고 사람들의 삶에 더 쓸모 있는 것은 없으며, 여기에는 사람들을 악으로부터 보호해주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는 스토아 철학의 역설에 대한 철학적 확신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를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 또한 분명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이를 알리기 위한 가장 좋은 형식으로 논변을 채택했다.